2025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기: 역사와 미래를 잇는 용산 도시공원
추석 연휴에 떠난 용산기지 둘레길 여행
지난 2025년 10월 11일,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갈 무렵 우리 가족 4명은 용산기지 둘레길 도시공원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다른 참가자와 2명의 전문 해설사와 함께 서울 한복판 용산 미군기지 남단을 걸으며, 외국군 주둔지였던 공간이 시민의 공원으로 거듭나는 변화를 몸소 느껴보는 특별한 산책이었습니다.
여행은 용산기지 주변 3.1km 구간을 약 2시간에 걸쳐 이동하는 코스로 진행되었습니다. 코스는 용산의 변천사를 담은 전시관에서 시작해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까지 이어졌고, 도심 한가운데 금단의 땅이었던 미군 기지가 어떻게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발걸음마다 펼쳐졌습니다. 이제 그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용산의 기억을 품은 출발지: 용산도시기억전시관
첫 발걸음은 용산도시기억전시관(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7)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용산의 도시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자, 앞으로 조성될 용산공원에 대한 시민 소통의 장입니다. 전시관 1층의 기억방에서는 근현대 서울 용산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었고, 2층 기록방에는 용산기지와 용산공원 조성 관련 아카이브 자료가 가득했습니다.
전시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붉은 벽돌 건물 한 채가 눈에 띕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지어진 용산철도병원 건물로, 일제강점기 철도 관련 시설 중 현존하는 유일한 근대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용산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요. 한 세기 전 철도 노동자들의 치료를 위해 세워졌던 이 건물이, 이제는 역사의 산 증인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관 주변을 거닐다 보니 와서(瓦署) 터라는 표석도 소개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왕실과 관청에 쓸 기와와 벽돌을 굽던 관아가 바로 이 용산 일대에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 용산역 인근 개발 부지에서 조선시대 기와 가마터 15기가 발굴되기도 했다니, 용산이 예부터 건축 자재 생산의 중심지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용산도시기억전시관 일대는 일제강점기에는 철도국, 철도관사, 철도병원, 철도공장 등이 밀집하여 철도 기지로 개발되었던 곳으로. 수많은 철도 종사자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던 용산 역전마을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삶의 흔적 위에 현대의 빌딩숲이 함께 보이는 풍경이, 용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용산역에서 공원으로: 버들개문화공원과 신용산의 변화
전시관을 나와 첫 번째 목적지인 버들개 문화공원(용산구 한강로3가 98-4)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 공원은 앞으로 용산역과 용산공원을 연결하는 용산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도록 계획된 곳입니다. 서울시는 용산공원 조성과 연계하여 이곳 지하에 대형 공공도서관과 문화시설을 만들고 지상에는 음악이 흐르는 녹지 광장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머지않아 이 곳이 철길로 단절되었던 용산역과 공원을 잇는 보행 녹지축이 될 거라니 상상만으로도 설렙니다.
용산역 일대 신용산 지역은 일본군의 군사 교통 거점이자 철도 도시로 변모한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일제는 러일전쟁 후 서울 용산 일대를 거대한 군사철도 기지로 만들었고, 용산역은 경인선·경부선·경의선·경원선 등 한반도 간선철도의 요충지이자 시·종착역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군사전략상 중요했던 용산역 주변에는 일본 육군이 주둔하고 물자가 집결했지요. 해방 후 들어온 미군도 이 철도망을 통해 물자를 수송하며 용산기지를 운영했습니다. 이렇게 일제와 미군을 거치며 변화한 신용산의 모습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는 옛 철도관사 마을 터와 일본식 건물 자취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해설사 분이 녹슨 철도 레일과 오래된 적산 가옥의 흔적 하나하나가 용산의 기억이라고 설명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편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에 한때 100층짜리 랜드마크 빌딩을 세우는 등 초대형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무산 위기를 겪으며 오랫동안 중단되었지요 최근 들어 그 사업이 재개되어 용산역 일대 개발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하는데, 미래 용산공원과 어떻게 어우러질지 궁금해졌습니다. 참고로 이곳 신용산역 부근은 과거 지하철 4호선 건설 당시 애를 먹었던 구간이기도 합니다. 당초 노선을 직선으로 놓으려면 미군기지 내부를 지나야 했는데, 보안상의 이유로 부득이 우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계획에 없던 경로로 터널을 뚫느라 어려움을 겪었다는데, 이 일화는 용산 미군기지가 얼마나 서울 도시 계획에 큰 영향을 주었는지 실감하게 했습니다.
숨겨진 서빙고 근린공원의 옛 기억
용산역 뒤편 고가도로를 지나 서빙고 근린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이 공원은 용산미군기지 남서쪽 담장과 인접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해 있어, 마치 숨은 정원처럼 한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공원 입구도 아파트 단지 사이 좁은 길 끝에 있어,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면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빙고근린공원은 앞으로 용산공원이 조성되면 도심과 공원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 될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담장 건너 기지 내부를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해서, 시민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하네요.
이곳이 흥미로운 것은 겉보기엔 한적한 근린공원이지만, 담장 너머 자리한 터가 알고 보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군사 시설의 중심지라는 사실입니다. 해설사에 따르면, 지금 공원 북쪽 담장 안쪽으로 일제가 남산 기슭 외에 용산에도 총독 관저(조선총독의 사저)를 지어 놓았고, 그 인근에 일본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군이 그 일본군 청사를 이어받아 한동안 사령부 건물로 사용했고, 한국전쟁 직전 잠시 대한민국 육군본부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우리가 밟고 선 공원 지하에는 당시 만들어진 지하 벙커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일제가 연합군 공습에 대비해 지은 작전 지하호로 추정되는데, 총독 관저와 사령부 청사를 연결하여 비상시 피신통로로 쓰였다고 하죠. 지금도 입구와 내부 구조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용산공원 조성 시 역사 교육 공간 등으로 활용할 가치가 높다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서빙고공원 담장 안쪽으로 보이는 적산 가옥 형태의 건물은 미군이 지은 121병원 건물입니다. 원래 이 자리는 앞서 언급한 일제 총독관저가 있던 터인데, 6·25 후 미8군이 이곳에 군병원을 세워 운영해 온 것이죠. 미군의 용산 121병원은 2019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현재 방치된 이 건물은 머지않아 철거되고, 대신 그 자리에 일제 용산총독관저의 옛 정원과 유구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듣고 보니, 일본의 통치와 군국주의의 심장이었던 공간이 훗날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거듭나고, 그 흔적은 역사 교육의 장으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게 다가왔습니다.
동부이촌동: 모래섬에서 고급 주거지로
산책 코스는 용산기지 담장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졌고, 이내 동부이촌동 주택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촌동은 현재 한강 변의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부촌이지만, 과거에는 강물이 빚어놓은 모래톱과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안내에 따르면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 이촌동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겨 황무지로 변했고, 조선총독부가 한때 이곳을 아예 폐동(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지정할 만큼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랬던 곳이 1967년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 대대적인 한강 매립 사업을 통해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폭넓었던 한강 수로를 줄이고 강변을 메워 주택지를 조성하면서, 오늘날의 동부이촌동이 탄생한 것이죠. 사람 한 명 살기 힘들다던 이 땅이 매립 한 번에 서울을 대표하는 고급 주거지로 거듭난 셈입니다.
걸으며 바라본 이촌동 고층 아파트들의 모습은 용산기지와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한쪽엔 빽빽한 아파트 숲, 다른 쪽엔 드넓은 녹지 공터가 펼쳐져 있으니 말입니다. 해설사 분은 과거 물난리가 나던 모래섬이 지금은 비싼 아파트촌이 되었듯, 용산기지도 머지않아 서울의 가장 귀한 녹지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용산기지 부지는 여의도 면적에 맞먹는 약 243만㎡(73만 평)로, 서울 한복판에 남은 마지막 거대 개발지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또 다른 빌딩숲이 아닌, 100년만에 시민에게 돌아온 귀중한 공원으로 만들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덕분에 용산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촌동 주민들에게도 용산공원은 집 앞 공원이 될 터, 벌써부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와 K-컬처의 만남
둘레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이었습니다. 이 박물관은 동부이촌동 용산가족공원 부지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2005년 이곳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한 우리나라 대표 박물관입니다. 용산 미군기지의 주한미군 8군 사령부 골프장을 돌려받은 부지에 국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박물관 자체가 용산기지 반환과 도시 변화의 상징이라 할 만하지요. 박물관 정문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방금 우리가 지나온 용산기지 어린이정원 부출입구와 연결된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박물관 뒷마당이 곧 용산공원 부분개방지와 연결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2022년에 용산공원 일부가 어린이정원으로 시범 개방되면서, 박물관 측과 협력하여 관람객들이 공원도 함께 둘러볼 수 있도록 동선을 연계해 두었다고 합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자체로도 역사와 현대가 만나는 문화공간입니다. 특히 세계적인 K-팝 스타 BTS와의 인연이 유명한데요. 2020년 코로나로 전세계 졸업식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을 때, BTS가 이 박물관에서 축하 공연과 연설을 촬영해 유튜브로 송출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엔 주최 Dear Class of 2020 행사였는데, 당시 BTS는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의 길이라는 긴 복도와 야외 열린마당을 무대로 삼아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전세계 팬들과 졸업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박물관이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지요. 박물관 측도 이를 기념하여 BTS 촬영 지점 바닥에 표시 스티커를 붙여두고 포스터를 설치해 두었는데, 저도 현장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박물관 내부 전시를 둘러보니 곳곳에 RM이 다녀갔다는 표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BTS의 리더 RM이 평소 우리 문화재와 전시회에 깊은 관심을 갖고 틈틈이 방문하는 덕분에, 그의 팬들이 박물관으로 몰려오는 문화 현상도 생겼다고 하네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물관 뮤지엄샵 뮷즈(MU:DS)의 인기였습니다. 뮤지엄과 ‘즈(goods)를 합친 이름의 뮷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전국 국립박물관들의 소장품을 모티브로 한 공식 문화상품 브랜드인데요, 최근 몇 년 사이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실제 2023년에는 연 매출 213억원을 돌파하여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2025년에는 300억원 달성도 전망된다고 합니다. 뮷즈 상품 중에는 BTS RM이 소장해서 화제가 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부터, 선비의 얼굴이 그려진 머그컵에 차가운 음료를 따르면 볼이 붉게 물드는 재치있는 잔까지 다양했습니다.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이런 상품들이 MZ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주말마다 박물관 굿즈샵에 오픈런 줄이 생길 정도라고 하니 놀라웠습니다. 전통 문화유산이 K-컬처를 만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지요.
용산가족공원: 미군 골프장이 시민 녹지로
이어진 코스는 바로 옆 용산가족공원으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용산가족공원은 1992년 미군 8군 사령부의 골프장 부지를 반환받아 조성한 공원으로, 넓은 잔디밭과 연못, 숲길이 아름다운 도심 속 휴식 공간입니다. 용산기지 둘레길 코스 중에서도 가장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었어요. 주말이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때도 아이들이 연못가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연인들이 은행나무 길을 거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인과 그 가족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이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즘 이 용산가족공원이 야외 결혼식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그린웨딩 프로그램을 통해 2024년부터 봄·가을 주말마다 이 공원에서 시민들을 위한 작은 결혼식이 열리고 있지요. 별도 대관료 없이 자연 속에서 개성있는 예식을 올릴 수 있어 예비 부부들의 신청이 폭주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찾은 날도 마침 잔디 광장 한켠에서 결혼식 리허설이 진행 중이었는데, 하얀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와 들러리들이 공원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과거 군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시민의 행복을 위한 무대로 변신한 것이지요. 용산가족공원은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와 함께 2020년에 용산공원 예정지구에 공식 편입되어, 향후 용산공원의 일부로 통합 관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즉 머지않아 이곳 가족공원과 옆 박물관 일대가 모두 커다란 용산국가공원의 한 조각이 되는 것이지요. 도심 속 초록빛 오아시스였던 가족공원이 보다 체계적인 디자인을 통해 시민에게 사랑받는 명품 공원으로 거듭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장교숙소 5단지: 금단의 땅 개방의 시작
이제 산책의 마지막 구간, 장교숙소 5단지로 향했습니다. 서빙고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니 한쪽으로 미군기지 담장이 열리며 낮은 아파트 건물 몇 동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로 개방된 장교숙소 5단지입니다. 이 부지는 원래 1986년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땅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미군 장교용 임대 아파트 18개 동을 지었던 곳입니다. 그러다 2020년 8월, 이 일대를 서울시와 국토부가 용산공원 조성의 미리보기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최초 개방하였습니다. 저희 가족도 이곳은 처음 들어가 보았는데, 담장 안쪽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정말 용산기지 땅을 밟고 있구나! 하는 벅찬 감정을 느꼈습니다. 같이 걷던 다른 관람객들도 와, 여기가 그동안 지도에 초록색으로만 표시되던 그 땅인가 보네요 라며 신기해 했지요.
5단지 내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116년 만에 돌아온 용산 땅을 우리가 밟고 있다는 것이었죠. 실제로 용산기지는 1904년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한 이후 줄곧 일본군과 미군의 주둔지였고, 한국인에게는 금단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거쳐 비로소 시민 품에 돌아왔으니, 감격스럽고 눈물날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r. 반면에 만약 미군기지가 없었더라면 이 땅도 진작에 아파트 숲이나 달동네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유흥준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오히려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었기에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녹지를 남길 수 있었다는 역설적인 상상을 하게되네요. 그래서 더욱 이 땅만큼은 개발 논리에 흔들리지 말고 100년 대계의 자연공원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비로소 주권국가로 회복되는 과정에 있다는 역사적인 생각이...... 이리 오래 걸리는 것일까?
현재 5단지에는 개방된 산책로와 함께 일부 건물을 활용한 전시관, 카페 등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가 들어가 본 전시공간에는 용산기지의 역사와 미래 계획을 소개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미지의 땅에 대한 시민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남은 장교 아파트 건물들은 앞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청년층과 여행자를 위한 유스호스텔이나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한때 미군 장교와 그 가족들의 주거지였던 아파트가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니 흥미로운 일입니다. 산책로 끝에 서니, 용산기지 한복판으로 곧게 뻗은 미8군 도로와 주한미군 숙소였던 드래곤힐 호텔의 붉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거대한 드래곤힐 호텔은 아직 반환되지 않아 현재도 미국이 보유 중인데, 언젠가 용산공원이 완전히 조성되면 그 자리 또한 공원의 일부로 편입되리라 기대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용산공원 한복판에 우뚝 서게 될 텐데, 어떻게 활용될지 벌써부터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공원을 품은 도시- 용산의 미래를 그리며
두 시간 남짓의 산책을 통해 우리는 용산의 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잇는 여행을 한 셈입니다. 일제의 침탈 전진기지였던 용산이 미군 주둔지를 거쳐 이제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공원이 되기까지, 그 다이내믹한 변화의 현장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지요. 함께 걸은 전문 해설사님은 용산공원 조성 사업은 단순히 큰 공원을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냉전 시대를 극복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세대와 분야가 지혜를 모아가는 협력의 여정 자체가 대한민국 도시사에 큰 자산이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가 방금 걸은 이 길이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치유와 희망의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용산공원은 2027년 1차 개방을 목표로 본격적인 조성 공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2030년경에는 용산기지 대부분이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완전 개방될 전망입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서울 도심의 소중한 녹지 심장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미 확정된 공원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전체 부지의 80% 이상이 녹지화되고 894동에 이르는 기존 건물 중 역사적 가치가 있는 81동만 보존되며 나머지는 철거될 예정입니다. 일본군 건축물, 미군 막사, 벙커 등 일부 유산은 두고, 대부분 부지는 푸른 숲과 호수, 생태습지로 꾸며진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멋집니다. 특히 공원 중앙부를 따라 흐르던 만초천(蔓草川)이라는 개천을 복원해 남산에서 흘러오는 물길을 되살리는 방안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용산이라는 지명도 따지고 보면 한때 용산 기지 북쪽 언덕에 있었던 둔지산(屯之山)의 용(龍)과 그 자락에 흐르던 개천의 산(山)이 합쳐진 이름이라니, 오랜 세월 막혀 있던 물길과 지형을 복원하는 일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 저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며 상상에 잠겼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용산역에서부터 남산자락까지 거대한 녹지공간이 펼쳐지고,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그 안을 자유롭게 거닐게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오늘 우리가 걸은 이 둘레길도 아마 공원 안 산책로의 일부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용산 미8군 도로를 일반인이 걸어서 통과하며, 지금껏 보지 못했던 각도에서 서울 풍경을 바라보는 날도 곧 올 것입니다. 용산이란 공간이 지닌 아픈 기억과 추억이 공원의 나무와 길, 호수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새로운 생명력을 얻으리라 믿습니다. 이렇듯 역사를 딛고 피어난 미래의 공원, 용산국가공원을 함께 상상해보며 산책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침 가을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오후였고, 가족들과 저는 용산가족공원 잔디밭에 잠시 앉아 오늘의 여정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진짜 용산공원 다 열리면 또 오자!고 했고, 저도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언젠가 금단의 땅 용산이 열린 땅 용산으로 완전히 거듭나게 되면, 오늘 함께 걸었던 모두가 그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모일 것만 같습니다.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을 통해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느끼며 미래를 그릴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을 가슴에 안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용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이 길 위에서, 서울은 또 한 번 새로운 희망을 싹틔우고 있음을 느낍니다.